검은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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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경심려 남겨진 왕소

해수가 떠난지 몇년이나 흘렀다. 
시간을 다시 돌이킬수 있다면 나는 과연 다른선택을 했을까?
그랬다면 해수도 날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자 부질없는 상념이였다. 

아바마마 

솔직히 이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나와 부부의 연을 맺은 누이는 서로 필요로 인해 이용하는 관게일뿐이다. 
부부라기 보단 정치적 협력 관계에 가까울것이다. 
어미의 한에 짓눌려서 살아왔으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한을 키워온 여자 
왜 나를 바라보는 눈에 증오가 담겨있는지 알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통해서 지긋지긋해하는 부모를 보고 있는것이다. 
자식이 아닌 정치적 도구로만 여겼던 서로의 부모들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제대로 된 부모가 될리가 
저 아이를 바라볼수록 해수 배속에 잠시 머물렀던 내 아이가 생각났다. 
해수가 만약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여 그 아이만이라도 내 옆에 존재한다면 
그 아이는 유일한 내 아이일것이다. 
 
무슨일이냐 
누가 여기 들어와도 좋다고 그랬지 

그건...... 

내 싸늘한 목소리와 기에 눌려서 아이는 금방 풀이 죽었다.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등을 킬 차례입니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폐하와 태자가 밝히는 등을 문무백관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떨고 있는 태자의 어깨에 올린 손인 황후가 말했다. 
아이는 금방 제 어미의 치마자락에 파고들었다. 
나는 그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밖으로 나가자 모든 신하들이 마지막 등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태자와 내가 같이 풍년을 기원하는 등불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불이 금방 꺼졌다.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서 당황하는 기색이 흘러나오고 아랫것들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나는 바람이 좋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꽉 움켜쥐었다. 

해수구나...... 해수가 돌아왔구나

움켜진 손을 다시 펴봤지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은 본디 잡을수 없는것이지 
하여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날 떠나갔고 
내가 간절히 원하던 마음속 바람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해수야 보고 있으냐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으냐 
네가 내 옆을 떠난순간부터 생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아랫것들이 다급하게 다시 불을 준비해서 가지고 왔다. 
다시 바람은 불러오지 않았고 불을 환하게 타올랐다. 
마지막 등불이 올라가자 모인 신하들은 외쳤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대고려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해수야, 너의 원대로 바람을 타고 떠돌며 세상구경을 하다가 
이렇게나마 가끔씩은 날 찾아와주겠느냐 









1초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

시간의 가장 짧은 단위인 1초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1초동안은 수많은 생각이 흘러간다.
그 수많은 정보들은 보류된 채로 머리속에서 쌓여간다.
아마 내 머릿속에 들어온 죽음의 개념 또한 그랬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죽음이란 개념을 알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그날에 내가 왜 갑자기 죽음이라는 명제를 꺼내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내가 기억하는것은 어릴적 텅 빈 집에서 남은 가족들이 귀가하기전이였다는 것이다.
그 시간과 공간은 나 혼자만의 작은 세계였다.
나는 부엌에서 라면을 끊여먹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죽음이라는 심오한 주제에 대해
어린애가 돌린 사고회로가 꽤 논리적이라는 만족감으로 기억이 남았던것 같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적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본적 없으니 이건 확실히 믿을만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나의 곁을 떠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니 견딜수 없을정도로 쓸쓸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외의 친척들 아빠 내 동생
엄마...... 그리고 엄마 또 엄마.....
그러다가 생각의 초점이 타인에게서 내 자신으로 바뀌는 순간 느낌은 달라졌다.
흘려들었던 환생이라던가 귀신이라던가 종교적 사후세계라던가
분명 세상에는 죽음 뒤에 다음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나'이전 전생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설사 내가 다시 타인으로 환생된다고 해도 나였다는 기억은 없을것이다.
그럼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나도 언젠가 반드시 죽겠구나라는 죽음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와닿은 1초의 순간이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개학 마지막날 가족끼리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고가 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소리와 충격이 우리가족을 타고 있던 차를 덮쳤다.
정신을 차리자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시던 엄마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게셨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티비에서만 보던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곧 집근처에 살던 친척분이 나와 내 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나와 내 동생은 티비를 보면서 그날 저녁과 그 다음날을 보냈다.
이틀후 찾아온 이모에게 나는 엄마가 그날 그 시간에 돌아가셨다는걸 이야기를 들었다.
1초동안 일어날 수 있는일
사람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덮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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